회의 자리에서 임원의 판단을 뒤집어야 할 때
월례 회의에서 본부장이 석 달을 들인 신사업 안을 발표한다. 듣는 내내 대표의 머릿속에는 결론이 서 있다. 수치 전제가 낙관적이고, 인력 계획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 발표가 끝나자 대표는 그 자리에서 문제점을 순서대로 짚는다. 반박이 정확해서 아무도 거들지 않는다. 안은 접힌다. 판단으로 보면 옳은 회의였다.
그런데 그 다음 달부터 그 본부장은 회의에서 먼저 말하지 않는다. 묻는 것에만 답한다. 반년이 지나면 다른 임원들도 완성되지 않은 안은 회의에 들고 오지 않는다. 다 만들어서 통과될 것 같을 때만 꺼낸다. 대표는 조직이 소극적이라고 느끼는데, 조직은 그날 회의에서 무엇을 배웠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결정을 뒤집는 일과 사람을 깎는 일은 다르다
카네기는 상대의 체면을 살려주라고 했다. 잘못을 덮으라는 말이 아니다. 결정은 바꾸면서 사람은 남겨두라는 말이다. 이 둘은 같은 자리에서 동시에 일어나기 때문에 구분하지 않으면 늘 붙어서 처리된다.
안을 반려하는 데 필요한 것은 결론 한 문장이다. "이 전제로는 못 갑니다." 그 이상은 결정에 필요하지 않다. 조목조목 짚는 열 가지는 결정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표가 옳았음을 증명하기 위해 나온다. 그리고 그 증명은 공개된 자리에서 한 사람의 판단력에 대한 평가로 기록된다.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반려된 안이 아니라 반려당한 사람의 표정이다.
체면을 지켜주는 것이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점도 중요하다. 돈도 시간도 들지 않고, 결정을 양보할 필요도 없다. 바꾸는 것은 말하는 자리와 문장의 대상뿐이다.
결정은 공개된 자리에서 하고, 사람에 대한 평가는 문 닫고 한다.
현장에서 쓰는 법
- 사람이 아니라 전제를 부정한다. "판단이 안 됐다"가 아니라 "이 안이 쓴 전제가 지난 분기와 달라졌다"로 말한다. 같은 반려인데 남는 기록이 다르다.
- 살릴 부분에 먼저 이름을 붙인다. 석 달치 작업에서 쓸 수 있는 것을 하나라도 지목해 남기면, 그 사람의 시간이 통째로 부정되지 않는다.
- 세부 지적은 자리를 옮겨서 한다. 전제와 계산이 틀린 이유를 짚는 일은 필요하다. 다만 그 대화는 두 사람만 있을 때 한다.
- 뒤집은 뒤에 역할을 준다. 안이 접힌 사람에게 수정안이나 후속 과제를 맡기면 반려가 퇴출로 읽히지 않는다. 아무 일도 주지 않는 것이 가장 강한 평가다.
- 보직을 바꾸거나 내보낼 때는 마지막 문장을 준비한다. 떠나는 사람이 가지고 나가는 한 문장이 남는 직원들이 회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 상대가 인정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다. "제가 틀렸습니다"를 받아내야 끝나는 대화는 결정이 아니라 승부다.
이 방식이 무르다고 느껴진다면 결과를 보면 된다. 체면을 지켜준 조직에서는 미완성 안이 계속 올라온다. 대표가 판단할 재료가 끊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반대쪽 조직에서는 다 만들어진 안만 올라오고, 그 안은 이미 되돌리기에 늦다.
한 줄 요약
안을 접는 데 필요한 말은 한 문장이다. 그 뒤에 덧붙이는 말은 결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기기 위한 것이고, 그 값은 다음 회의의 침묵으로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