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금을 미루는 거래처에 계약서를 들이밀기 전에

결제일이 세 번째로 지났습니다. 담당자는 전화를 받지 않고, 문자에는 "확인 중"이라는 답만 옵니다. 우리 쪽 경리는 이미 지쳤고, 자금 계획은 이번 달에도 밀렸습니다. 책상에는 계약서가 펼쳐져 있습니다. 지연이자 조항에 형광펜이 그어져 있고, 법무 쪽에서 보낸 내용증명 초안도 와 있습니다.

보내면 돈은 아마 들어올 겁니다. 그리고 그 거래처와의 관계는 그날로 정리됩니다. 문제는, 그 거래처가 5년을 함께 온 곳이고 올해 갑자기 어려워진 곳이라는 점입니다.

이럴 때 대표가 실제로 고르는 것은 "강하게 갈까, 봐줄까"가 아닙니다. 상대를 어떤 사람으로 취급할 것인가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모습대로 행동합니다

고상한 동기에 호소하라.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 원칙 18

카네기의 관찰은 단순합니다. 사람은 대체로 자기 자신을 정직하고 신의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그 자기 이미지를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대를 "돈을 떼먹으려는 사람"으로 대하면 그 취급에 맞게 방어하고 회피하지만, "사정이 생겼을 뿐 약속은 지키는 사람"으로 대하면 그 기대에 자기를 맞추려는 힘이 생깁니다.

이것은 순진한 낙관이 아닙니다. 계약서 조항을 포기하자는 말도 아닙니다. 조항은 그대로 두되, 먼저 꺼내는 카드를 바꾸는 일입니다. 압박은 언제든 쓸 수 있지만, 한 번 쓰고 나면 그 뒤에 신뢰를 다시 놓을 자리가 없습니다. 순서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현장에서 쓰는 방식

  • 상대의 평판을 먼저 말합니다. "5년 동안 한 번도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어서, 이번엔 저희가 모르는 사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한 문장이 대화의 전제를 바꿉니다.
  • 추궁 대신 상황을 묻습니다. "왜 안 주십니까"는 상대를 피고로 만듭니다. "언제까지가 현실적으로 가능하신지 말씀해 주시면 저희가 그에 맞춰 계획을 세우겠습니다"는 상대를 결정권자로 남겨 둡니다.
  • 상대가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상대 입으로 말하게 합니다. 우리가 정한 날짜보다, 상대가 스스로 말한 날짜의 구속력이 훨씬 큽니다.
  • 그 약속을 문서로 남기되 어조는 그대로 둡니다. "말씀해 주신 일정으로 정리해 두겠습니다"는 기록이고, "미이행 시 조치하겠습니다"는 선전포고입니다. 남는 내용은 같습니다.
  • 안 되면 그때 조항을 씁니다. 고상한 동기에 호소한다는 것은 대비를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먼저 쓰지 않을 뿐입니다.

같은 원리는 사내에서도 그대로 작동합니다. 인수인계를 대충 하고 나가려는 직원에게 규정을 들이대는 대신 "이 팀을 여기까지 만든 사람이 마무리까지 하고 나가는 모습을 남기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할 때, 상대가 지키려는 것은 규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물론 모든 상대에게 통하지는 않습니다. 처음부터 속이려고 온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표가 일 년에 만나는 사람들 중 그런 경우는 생각보다 적고, 나머지 대다수는 기대받은 대로 행동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쪽을 기본값으로 두느냐가 조직의 거래 방식이 됩니다.

한 줄로

상대를 어떤 사람으로 대하느냐가, 상대가 어떤 사람이 될지를 상당 부분 결정합니다. 오늘 껄끄러운 통화를 앞두고 있다면, 조항을 꺼내기 전에 상대의 평판을 먼저 꺼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