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디어를 상대의 아이디어로 만드는 법

대표님이 신사업 구상을 임원회의에서 30분 동안 설명합니다. 반년을 들여다본 안이라 논리도 자료도 빈틈이 없습니다. 설명이 끝나자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좋은 방향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석 달이 지나도 일이 굴러가지 않습니다. 담당 임원은 정해졌는데 진도가 없고, 물어보면 “대표님 말씀대로 준비하고 있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옵니다. 반대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는데, 움직이는 사람도 하나도 없습니다.

이럴 때 대표님은 조직의 실행력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런데 막힌 자리는 실행력이 아닙니다. 그 안이 끝까지 대표님의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임원들에게 그것은 검토할 안이 아니라 받아 적을 지시였고, 지시는 실행은 시켜도 책임까지 옮기지는 못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꺼낸 결론을 지킵니다

상대가 그 생각을 스스로 해냈다고 느끼게 하라.데일 카네기, 인간관계론 · 원칙 15

사람은 남이 건넨 결론보다 자기가 꺼낸 결론을 훨씬 더 오래, 더 열심히 지킵니다. 남의 결론은 틀려도 내 책임이 아니지만 내 결론은 틀리면 내 책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같은 내용이라도 누구의 입에서 먼저 나왔느냐에 따라 실행의 온도가 달라집니다.

이 원칙이 대표의 자리에서 유독 어려운 이유는, 대표님은 대개 답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답을 아는 사람이 답을 말하지 않고 기다리는 일은 명백한 비효율처럼 느껴집니다. 실제로 회의 시간은 길어집니다. 대신 회의가 끝난 뒤의 석 달이 짧아집니다.

완성된 답 대신 재료를 들고 갑니다

구상을 접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꺼내는 형태만 바꾸는 일입니다.

  • 결론이 아니라 문제를 먼저 놓습니다. “이 사업을 하겠습니다” 앞에 “주력 제품의 성장이 2년째 멈춰 있는데, 이대로 3년을 더 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를 놓습니다. 문제를 공유한 사람만이 답을 함께 찾습니다.
  • 재료는 다 주고, 마지막 장은 비웁니다. 시장 자료도 내부 수치도 제약 조건도 준비한 만큼 전부 공유합니다. 다만 마지막 장을 결론이 아니라 질문으로 끝냅니다.
  • 먼저 나온 의견에 이름을 붙여 둡니다. “그건 지난달에 본부장님이 짚으셨던 지점입니다”처럼 출처를 밝히면, 그 사람은 이 안의 공동 저자가 됩니다.
  • 내 생각과 같은 의견이 나오면 거기서 멈춥니다. “제 생각도 그랬습니다”를 덧붙이는 순간 그 안은 다시 대표님의 것이 됩니다. “그 방향으로 한번 정리해 주시겠습니까”로 넘기는 편이 낫습니다.
  • 수정은 반드시 받습니다. 원안 그대로 통과된 안은 여전히 대표님의 안입니다. 임원들이 고친 부분이 하나도 없다면 소유권은 아직 넘어가지 않은 것입니다.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답을 숨겨 두고 상대가 맞힐 때까지 기다리는 연출이 아닙니다. 그런 회의는 몇 번만 반복해도 다 들키고, 그다음부터 임원들은 질문 앞에서 대표님이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부터 추측합니다. 그러면 회의는 전보다 더 조용해집니다. 진짜 목적은 결론의 지분을 나누는 것입니다. 지분이 있는 사람은 시키지 않아도 보고합니다.

한 줄로

실행되지 않는 결정은 대개 틀린 결정이 아니라, 주인이 한 명뿐인 결정입니다. 다음 회의에서는 마지막 장의 결론을 빼고 그 자리에 질문 하나를 놓아 보십시오. 답이 한 바퀴 돌아 임원의 입에서 나오면, 그때부터 그 일은 저절로 굴러갑니다.